라벨이 믿음인 게시물 표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피 뿌림이 가지는 의미

1. 옛 언약의 피 뿌림(출 24:6~8) 이것은 역사적으로 B.C. 1400년경에 아라비아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행위 율법 언약 때에 제단과 백성에게 뿌려진 번제와 화목제 희생짐승의 피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보편적 율법의 완전한 행위를 통해 구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모든 인류를 대표합니다. 이 피는 시내산 언약의 두 당사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생명을 상징하는데, 양 당사자가 언약을 각자의 생명으로 보증한다는 의미로 뿌려진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편에서는 언약의 모든 내용을 항상 지킬 것이며 지키지 못할 때는 죽음으로 그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미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언약을 지키는 모든 백성에게 약속된 복을 반드시 내려줄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는 (죽으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그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옛 언약의 보편적 도덕법을 모두 지킨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며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 아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 진노에서 합법적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 단번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Shorts1   📺   2. 새 언약의 피 뿌림(마 26:27~28) 이것은 A.D. 33년경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 형틀에서 흘리신 희생의 피입니다.  이 피는 모든 인류의 범죄를 대속하시는 피가 되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제단에 뿌려져서(히 9:11~12; 12:24),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죄사함을 베풀어서, 사람과 화해를 이루게 하시는 피입니다. 그리고 이 피는 그 효력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 뿌려져서(히 10:22 벧전 1:2), 하나님의 영원한 속죄를 선언해 주며, 법적이고 실제적으로 죄로부터 해방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거듭남을 이루어 주고, 성령의 영원한 내주를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두 언약에서 뿌려진 피의 공통점은 그 피...

전능한 믿음의 지식

이미지
성경의 보배로운 약속들에 대해 문자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어도, 거기에 믿음이 더해질 때 마음 중심에까지 받아들인 명확한 지식이 되며(요 6:69; 17:3) 때로 이것을 깨달은 지식(마 13:23 골 1:6) 또는 성령께서 알게 하신 지식이라고도 합니다(고전 2:10~13).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지식은 반드시 믿은 그 내용대로 성취되고, 그 내용에 합당하게 기꺼이 자원하는 실천으로 이어집니다(마 13:44~46).  그런 면에서 믿음의 지식은 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의무적인 당위와 인위적인 노력에 속한 것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직 그 복된 약속을 믿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며 율법 아래 있는 것입니다.  YouTube   📺      Shorts   📺

성도의 두려움(경외심)

이미지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사 11:2~3) 성도가 가져야 할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이 두려움은 율법 아래서 가지는 두려움이 아니라 은혜 아래서 가지는 두려움입니다. 이상하지만 경험하는 사람은 인정하듯이 이 두려움의 열매는 신령한 기쁨, 가장 큰 기쁨과 평안입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두려움이기에  ➤ (주님께는 없지만)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 를 죽음보다 두려워하고 ➤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 끊어지는 것을 더욱 그러하고 ➤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것 을 더욱 그러합니다. 이 두려움은 참된 지식과 지혜의 기초입니다(잠 1:7; 9:10). 이 두려움의 정상이 믿음의 정상입니다(창 22:12). 이 두려움은 예수님의 행복의 근원이었습니다(사 11:3). 이 복된 두려움의 충만을 구합니다. YouTube   📺      Shorts   📺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

이미지
일반적으로 처음 주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는 복음에 대한 나누어지지 않은 전심의 믿음을 가지게 되고 해방과 만족의 기쁨이 충만하고 전심으로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열정으로 즐거이 헌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듭남의 체험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죄에 대한 패배와 영적 침체를 경험하며 다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간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침체된 그의 믿음에는 구원을 의심하는 마음과 불안이 함께 합니다. 즉 처음 구원 얻을 때의 믿음보다 많이 작아졌고 약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처음 구원 얻은 믿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믿음이 있을지라도 구원은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신약성경의 많은 예를 보면 그럴지라도 구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눅 22:31~32 롬 14:22~23 고전 5:5 벧후 1:5~11 요일 3:18~20). 그는 여전히 구원 받은 사람이며 그 안에는 구원 얻는 믿음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Shorts1   📺 이를 통해 구원 얻는 믿음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분량과 또는 깨달음의 분량과 또는 확신의 분량과 또는 마음의 집중의 분량과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구원 받을 때의 뜨거운 믿음과 구원 얻는 믿음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의 내적 증언’ (롬 8:9, 16 요일 5:10)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 (마 7:23 요 10:27 고후 13:5)가 있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심으로 유지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약해져서 감정이 식고 깨달음이 둔해지고 마음이 나누어져도 그 믿음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습니다(눅 22:31~32). 내쪽에서 간혹 사라진 것처럼 착각해도 그것은 착각일 뿐 여전히 성령의 내적 증언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의 끈은 경험적으로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Shorts2   📺 그러므로 여기서 구원 얻는 믿음의 두 가지 본질을 '성령의 내주로 인한 내적 증언'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라고 한다면 처음...

믿음의 역동성

이미지
믿음은 한 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항상 역동적으로 변합니다. 거시적으로는 그 수준에 있어서 성장해가고 미시적으로는 그 크기가 등락을 반복합니다.  믿음의 수준이 성장한다는 것은 믿음의 내용인 말씀에 대한 이해와 믿음의 결과인 성령의 열매와 사역의 능력이 성장해간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크기가 변한다는 것은 이미 믿고 있는 말씀에 대한 믿는 순전함의 정도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은 그 수준이 항상 성장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퇴보하기도 하며 정체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체되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무생물적인 정체가 아니라 믿는 마음과 믿음을 방해하는 세력 사이의 힘의 균형에 의한 정체이므로 역동적인 정체입니다. Shorts1   📺 그리고 믿음의 이런 역동적인 특성은 무엇보다도 구원 얻는 믿음에서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나 구원 얻는 믿음이 그 수준에 있어서 성장할 뿐만 아니라 퇴보할 수 있고 그 크기에 있어서 커질 뿐만 아니라 작아질 수 있다고 할 때 그 퇴보와 작아짐은 그가 하나님이 보실 때 참 성도라면 구원을 잃을 정도까지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사실 믿음의 역동성에 대한 이상의 내용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 중에 하나로서 기본적인 지식에 속하지만 의외로 믿음을 고정된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사고 방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성경에는 다른 사람의 믿음의 수준과 크기를 평가할 수 있는 명확한 말씀들이 있지만 그것은 중요한 몇 가지 사항에 제한되며 각 사람의 믿음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계신 분은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YouTube   📺      Shorts2   📺

노예의지와 자유의지

이미지
문자로 증언되는 율법에 대한 행함의 의에 있어서 우리의 의지는 언제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노예의지이지만 성령으로 증언되는 복음에 대한 믿음의 의에 있어서 우리의 의지는 언제든 성공할 수 있는 자유의지입니다. Shorts1   📺 누구나 복음에 대한 단순한 믿음에 의해 법적으로 의롭게 될 뿐만 아니라 본성적으로 새 생명의 새 사람으로 거듭나고 실천적으로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는 신약성경, 특별히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포퓰리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이 아니기에  모든 인류를 위한 진실한 포퓰리즘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 했던 유대인들이 보기에 바울의 이런 가르침은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며 이 가르침을 받고 변화받아 기뻐하는 이방인들을 볼 때  시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불신자의 구원을 위해서나 성도의 복되고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해결책은 이 단순한 십자가 대속의 복음입니다.   YouTube   📺      Shorts2   📺

믿음을 믿지 못함

이미지
  신앙생활 기간 중 몇 년 동안 믿음을 믿지 못한 적이 있었죠. 왜냐하면 주변에서 말하는 믿음이 능력이 없는 이론으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경험한 믿음은 변화시키고 삶에 활력을 주는 믿음이었는데 어떻게 이 사람들의 믿음은 그런 능력이 없이  단지 영원한 속죄를 받았다는 이상한 안심만으로 (겉으로나마) 만족해 할 수 있는지 이상했죠. 분명히 믿음에 대한 말은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능력이 없을 수 있지 하며 그런 믿음에 오염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두려워했습니다. Shorts1   📺 말은 맞는데 능력은 없는 이상한 믿음 그리고 내리게 된 결론이 그것은 성경의 믿음이 아니라 사람이 고안한 믿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와  인격적인 만남과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는 이론으로만 맞는 믿음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믿게 만드는 그리고 심지어 죄를 지어도 회개하지 않게 하고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 하고  굳어진 마음으로 그 가운데 머물게 하는 믿음 참 놀라운 고안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Shorts2   📺 그리고 고민거리였습니다. 말은 맞는데  성령의 역사가 없고 인격적인 만남의 경험이 없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성령도 눈에 안보이고 인격적인 만남도 눈에 안보이고 변화시키는 능력도 눈에 안보이기 때문에 믿음에 대한 맞는 말을 하고 처신을 그럴듯하게 하면 그것과 성경의 믿음과의 차이를 설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Shorts3   📺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행위와 분리되지 않기에  믿었으니 행하자가 아니라 믿으면 행한다는 것과 믿음만큼 행한다는 것과 믿음의 내용대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믿음은 가장 먼저 마음을 행복하게 변화시키고  자발적으로 경건한 삶을 살게 하며 내 손이 닿지 않는 환경을 변화시키고 약속에 근...

회개의 의미와 두 가지 용례

이미지
회개(μετάνοια)의 문자적 의미는 ‘어떤 계기를 통해 마음을 돌이킴, 마음의 변화’ 입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마음’ 과 ‘변화’ 입니다. 한글성경의 ‘회개’에는 ‘뉘우쳐 삶을 고침’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즉 마음의 변화 뒤에 맺히는 합당한 삶의 열매까지를 포함합니다. 참된 회개를 하면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하므로 반드시 회개에 뒤따르는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점에서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성경적 회개의 의미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회개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집 떠난 탕자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므로 그 은혜의 빛 안에서 자기 죄를 깨달아 그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 입니다. Shorts1   📺 여기서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 과 '믿음' 입니다. 그 믿음 안에서 죄를 깨달아 내버리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킬 수 있기 때문에 회개는 죄사함 받는 믿음의 시작이요 전반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막 1:15a 행 20:21a). 그리고 죄사함 받는 믿음의 후반부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믿음’ 입니다(막 1:15b 행 20:21b).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믿음까지를 회개로 보는 넓은 의미의 회개 가 있는 것 같습니다(눅 24:47 행 11:18). 즉 성경의 회개는 좁은 의미 와 넓은 의미 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좁은 의미 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 안에서 죄를 깨달아 내버리고 그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고(막 1:15a 행 20:21a) 넓은 의미 의 회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믿음'까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눅 24:47 행 11:18). YouTube   📺      Shorts2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선악과)

이미지
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창 2:9)가 가르쳐 주는 두 가지 1) 하나님이 정하신 영생의 길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하신 한 가지 말씀을 믿으면 영생을 계속 누리고,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영생을 잃고 반드시 죽게 됩니다(참고-요3:36). 즉 우리는 스스로 영생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만 영생하는 존재들입니다. 2) 선악의 지식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이 영생을 누리게 하는 선이고 믿지 않는 것이 영생을 잃게 하는 악이라는 선악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선악의 진리를 알게 하고 또 믿을 때 영생을 잃지 않게 하는 아담의 성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창조하셔서 동산 중앙에 두신 선하고 선한 나무인 것입니다. Shorts1   📺 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통점과 차이점 1) 공통점 그 나무가 증거하는 한 가지 말씀을 믿을 때 영생을 누리거나 얻습니다. 2) 차이점 (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 에덴 동산 안에서 주신 것입니다. -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이미 얻은 생명을 보존하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 무죄한 상태에서 그 말씀을 믿을 때 에덴 동산에서의 영생을 계속 누리는 중에 그보다 더 뛰어난 천국에서의 영생을 얻을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 그 영생을 잃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 에덴 동산 밖에서 주신 것입니다. - ‘먹으면 반드시 살리라’는 잃은 생명을 얻게 하는 말씀을 선포합니다(요 6:57). - 죄지은 사람이 그 말씀을 단번에 믿을 때 에덴보다 더 완전한 낙원인 천국에서의 영생을 얻게 해줍니다. - 그 얻은 영생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습니다(요 10:28). YouTube   📺      Shorts2   📺

구원 얻는 믿음의 5가지 구성요소

이미지
1. 속죄의 복음 에 대한 이해와 확신(롬 3:21~26) 2. 일생동안 자발적인 배교를 하지 않음(딤후 4:7 히 6:4~6; 10:26) 3. 하늘에 속한 행복과 경건의 열매를 맺음(마 7:19 갈 5:22~23) 4.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아는 인격적인 믿음(마 7:23; 25:12) 5.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와 내주(고후 3:6 롬 8:9,16) 더 늘이거나 줄일 수 있겠지만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5가지를 써봤습니다. YouTube   📺      Shorts   📺

트램폴린과 믿음

이미지
  점프 놀이기구인 트램폴린은 믿음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힘을 빼고 편안하게 트램폴린에 자신을 맡기듯 낙하하면 그 힘으로 다시 도약하며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처럼 믿음 역시 자기 힘으로 선을 행하려는 노력과 자기 의를 주장하는 고집을 버리고 현재의 자리에서 어린 아이 같이 자기 죄를 시인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의 복음 에 자신을 의탁할 때 오히려 그 믿음이 주는 속사람의 변화와 능력에 의해 하늘에 속한 행복과 경건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YouTube   📺      Shorts   📺

야고보서에 나타난 믿음

이미지
야고보에 의하면  믿음은(정도차는 있겠지만) 1. 시련을 견디게 하고 (약 1:3) 2. 기도를 응답받게 하고 (약 1:6) 3. 사람을 편견없이 대하게 하고 (약 2:1) 4. 선을 행하게 하고(약 2:22) 5. 병든 자를 구원하는(약 5:15) 현세의 경건과 생활을 위한 실제적이고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 YouTube   📺      Shorts   📺

로마서에 나타난 7차원의 구원(롬 1:16)

이미지
이 복음 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 1) 신분의 변화 (롬 3:28) 2) 형벌의 면제 (롬 4:7) 3) 감정의 변화 (롬 5:2) 4) 생명의 변화 (롬 5:18) 5) 본성의 변화 (롬 6:2, 18) 6) 생활의 변화 (롬 8:4) 누림의 정도는 믿음의 분량에 따른 각자의 몫이지만 성도이면 이 모든 구원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여섯 가지는 처음에 복음 을 믿을 때(롬 3:22) 성도에게 동시에 주어지며 다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경험상의 논리적 순서를 따라 한 가지씩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Shorts1   📺 그리고 이 모든 구원을 풍성히 누리는데 장애가 되는 세 가지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 주기 위해 세 가지의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 후(롬 6:1, 15; 롬 7:1)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차원의 구원은 ‘몸의 변화(롬 8:23)’ 인데, 이것은 연약과 질병으로부터의 현세적 치유를 뛰어넘는 근본적인 변화이자 주님의 재림 때부터 누리게 되는 구원으로서, 죄가 거하는 지금의 죽을 몸이 죄가 없는 영원한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롬 8:10~11). YouTube   📺      Shorts2   📺

최고의 행복(롬 14:17)

이미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으로서의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는 율법 이외의 한 의인 믿음으로 누리는 대속의 의와 거기에서 나오는 평강과 희락입니다. 성령에 의해 누리는 이 복음 의 행복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과 차원을 달리하는 압도적인 최고의 행복이며 복음 을 복음 답게 하는 행복이고 이 복음 의 행복이 성도와 교회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다면 최고의 전도의 능력이 됩니다(참고-행 2:46~47). 이러한 행복은 성도에게 생명의 양식이자 성령의 생수로서 영적인 삶의 유일한 힘입니다. YouTube   📺      Shorts   📺

죄와 복음과 성령

이미지
죄를 경험하는 사람의 마음이 복잡할 뿐 복음 은 매우 간단하고 복음 을 믿고 경험하는 것은 더 간단합니다. 복잡해진 마음으로부터 건져내어 단순한 복음 을 주목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를 기대합니다. YouTube   📺      Shorts   📺

갈라디아서의 복음, 믿음, 성령

이미지
1. 복음의 유일성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갈 1:7) 2. 복음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였거늘 누가 너희를 꾀었느냐 (갈 3:1) Shorts1   📺 3. 믿음과 어제의 성령충만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전에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여러 행위들로냐  혹은 단번에 듣고 믿음으로냐 (갈 3:2) 4. 믿음과 오늘의 성령충만 오늘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여러 행위들에서냐 혹은 단번에 듣고 믿음에서냐 (갈 3:5) 이상은 원어를 참고한 인용입니다. 복음은 어제나 오늘이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은혜를 단번에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사는 삶은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그 은혜를 다시금 처음처럼 단번에 믿어 새로운 성령충만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YouTube   📺      Shorts2   📺

믿음과 자백

이미지
구원 얻는 믿음은 언제나 자신이 자기 행위로는 죄인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의 태도 위에서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과정에서 때로 성령께서 어떤 죄에 대해서 주님 앞에 입술의 자백을 요구하십니다. 이런 자백은 처음 믿을 때와 믿은 이후에 모두 있을 수 있습니다(마 3:6 요일 1:9).  처음 믿을 때 자백하기를 거부하면 믿음을 갖지 못하여 구원 받을 수 없고 믿은 이후에 거부하면 영적 생명의 공급과 주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더 심한 징계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과 회개와 자백은 육신으로 행하는 자기 의와 자기 행위가 아닙니다. 성령과 변화된 양심의 역사에 저항하지 않고 항복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신과 회개하지 않음과 자백하지 않음이 힘써 거역하는 자기 행위입니다. YouTube 📺     Shorts 📺

옛 사람과 구원

이미지
여기서 옛 사람은 세상에 속한 나의 자아, 생명, 재물, 관계 등 믿기 전의 자신과 자신에 속한 모든 것입니다. 처음 십자가 대속의 복음 을 믿을 때 옛 사람인 나는 마음 중심으로 자신을 기꺼이 죽음에 내어 주어 구원과 바꾸었습니다. (롬 6:6)  옛 사람인 내가 처음 복음 을 믿을 때 마음 중심에서 경험적이고 전인적으로 그리스도와 동일시되고 연합되어 함께 죽었습니다. (고후 5:14) 나는 처음 복음 의 진주를 발견했을 때 나의 옛 사람 전부를 기꺼이 팔아서 그 복음을 영접했습니다. (마 13:45~46) Shorts1   📺 구원 받은 이후에도 좀 더 좁은 의미의 옛 사람인 죄의 지배를 받는 내적 인격으로서의 육신이 여전히 내 안에 함께 있지만 (롬 7:25) 이상의 사실에 대한 마음 중심의 고백은 변함없습니다 (갈 2:20) 성도는 그 마음에 거듭난 완전히 새로운 새 생명의 새 사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요 3:6 엡 2:15) YouTube   📺      Shorts2   📺

믿음의 실제적이고 풍성한 열매

이미지
복음 에 대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믿음으로 예가 됩니다. (고후 1:20 롬 8:32) 내가 믿음이 작거나 사모함이 없어서 약속들을 누리지 못할지라도 이것은 진리입니다. 복음 에 대한 믿음은 종합선물세트 같아서 그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으며 내적 행복을 누리고 활력 있는 삶을 살며 경건한 삶을 살고 그 믿음 안에서 풍성한 공급을 받으며 유능한 삶을 살고 산을 바다에 던집니다. (마 21:21) 그러므로 복음 을 믿는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이 모든 복을 가치와 선후의 질서를 따라 받아 누리기를 추구하며 세상이 부러워하고 바울의 동족이 시기하는 복된 삶을 살아감으로 (롬 11:11,14) 가장 강력한 전도를 할 수 있고 참된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롬 12:1) YouTube   📺      Shorts   📺  

로마서 7장 25절의 두 섬김

이미지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 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 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b) 성도의 거듭난 마음 은 하나님의 법을 진실로 즐거워하며 섬깁니다. 그러나 거듭난 마음일지라도 스스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길 능력이 전혀 없고 옛 사람인 육신이 여전히 성도 안에 거하기 때문에  만일 그 마음이 성령께서 증언해 주시는 십자가 대속의 은혜 를 항상 있는 구원 얻는 믿음 이상의 견고하고 (롬 4:18~21) 성숙한 믿음 (롬 6:3~7)으로 믿지 않을 때는  그 내면이 옛 사람인 육신 이 주도하는 율법적 이거나(롬 7:14~24) 정욕적 인(롬 6:1,15) 상태가 될 수 있으며 율법적인 상태일 때는 원하지 않음 에도 연약하여 내적 으로 범죄하게 되고, 정욕적인 상태일 때는 자발적 으로 행위 로까지 범죄하게 됩니다. YouTube   📺      Shorts   📺

믿음과 행함

이미지
믿음이 말이라면 행함은 마차 믿음이 기관차라면 행함은 객차 믿음이 원인이라면 행함은 결과 믿음은 행함을 낳는 부모 믿음은 마음과 관련되고 행함은 몸과 관련되므로 마음이 몸의 주인인 것처럼 믿음이 행함의 주인이 됨 그래서 야고보는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한다고 함 Shorts1   📺 믿음에서 행함이 나오나 행함에서는 믿음이 나오지 않음 믿음으로 믿음에 이름 (롬 1:17) 믿음의 내용인 말씀은 생명이기에 참 믿음은 말씀의 깨달음과 함께 자라가고 그 믿음만큼 마음이 변한 것이고 행복하고 경건하고 유능합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로서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행하면 살리라'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믿으면 살리라'에 대한 믿음이고 그 믿음의 핵심적 내용은 십자가 대속의 은혜입니다. YouTube   📺      Shorts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