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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언약과 새 언약의 피 뿌림이 가지는 의미

1. 옛 언약의 피 뿌림(출 24:6~8) 이것은 역사적으로 B.C. 1400년경에 아라비아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행위 율법 언약 때에 제단과 백성에게 뿌려진 번제와 화목제 희생짐승의 피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보편적 율법의 완전한 행위를 통해 구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모든 인류를 대표합니다. 이 피는 시내산 언약의 두 당사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생명을 상징하는데, 양 당사자가 언약을 각자의 생명으로 보증한다는 의미로 뿌려진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편에서는 언약의 모든 내용을 항상 지킬 것이며 지키지 못할 때는 죽음으로 그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미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언약을 지키는 모든 백성에게 약속된 복을 반드시 내려줄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는 (죽으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그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옛 언약의 보편적 도덕법을 모두 지킨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며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 아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 진노에서 합법적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 단번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Shorts1   📺   2. 새 언약의 피 뿌림(마 26:27~28) 이것은 A.D. 33년경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 형틀에서 흘리신 희생의 피입니다.  이 피는 모든 인류의 범죄를 대속하시는 피가 되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제단에 뿌려져서(히 9:11~12; 12:24),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죄사함을 베풀어서, 사람과 화해를 이루게 하시는 피입니다. 그리고 이 피는 그 효력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 뿌려져서(히 10:22 벧전 1:2), 하나님의 영원한 속죄를 선언해 주며, 법적이고 실제적으로 죄로부터 해방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거듭남을 이루어 주고, 성령의 영원한 내주를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두 언약에서 뿌려진 피의 공통점은 그 피...

옛 언약과 새 언약의 피 뿌림이 가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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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 언약의 피 뿌림(출 24:6~8) 이것은 역사적으로 B.C. 1400년경에 아라비아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행위 율법 언약 때에 제단과 백성에게 뿌려진 번제와 화목제 희생짐승의 피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보편적 율법의 완전한 행위를 통해 구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모든 인류를 대표합니다. 이 피는 시내산 언약의 두 당사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생명을 상징하는데, 양 당사자가 언약을 각자의 생명으로 보증한다는 의미로 뿌려진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편에서는 언약의 모든 내용을 항상 지킬 것이며 지키지 못할 때는 죽음으로 그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미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언약을 지키는 모든 백성에게 약속된 복을 반드시 내려줄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는 (죽으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그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옛 언약의 보편적 도덕법을 모두 지킨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며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 아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 진노에서 합법적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 단번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Shorts1   📺   2. 새 언약의 피 뿌림(마 26:27~28) 이것은 A.D. 33년경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 형틀에서 흘리신 희생의 피입니다.  이 피는 모든 인류의 범죄를 대속하시는 피가 되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제단에 뿌려져서(히 9:11~12; 12:24),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죄사함을 베풀어서, 사람과 화해를 이루게 하시는 피입니다. 그리고 이 피는 그 효력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 뿌려져서(히 10:22 벧전 1:2), 하나님의 영원한 속죄를 선언해 주며, 법적이고 실제적으로 죄로부터 해방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거듭남을 이루어 주고, 성령의 영원한 내주를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두 언약에서 뿌려진 피의 공통점은 그 피...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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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처음 주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는 복음에 대한 나누어지지 않은 전심의 믿음을 가지게 되고 해방과 만족의 기쁨이 충만하고 전심으로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열정으로 즐거이 헌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듭남의 체험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죄에 대한 패배와 영적 침체를 경험하며 다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간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침체된 그의 믿음에는 구원을 의심하는 마음과 불안이 함께 합니다. 즉 처음 구원 얻을 때의 믿음보다 많이 작아졌고 약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처음 구원 얻은 믿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믿음이 있을지라도 구원은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신약성경의 많은 예를 보면 그럴지라도 구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눅 22:31~32 롬 14:22~23 고전 5:5 벧후 1:5~11 요일 3:18~20). 그는 여전히 구원 받은 사람이며 그 안에는 구원 얻는 믿음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Shorts1   📺 이를 통해 구원 얻는 믿음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분량과 또는 깨달음의 분량과 또는 확신의 분량과 또는 마음의 집중의 분량과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구원 받을 때의 뜨거운 믿음과 구원 얻는 믿음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의 내적 증언’ (롬 8:9, 16 요일 5:10)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 (마 7:23 요 10:27 고후 13:5)가 있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심으로 유지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약해져서 감정이 식고 깨달음이 둔해지고 마음이 나누어져도 그 믿음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습니다(눅 22:31~32). 내쪽에서 간혹 사라진 것처럼 착각해도 그것은 착각일 뿐 여전히 성령의 내적 증언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의 끈은 경험적으로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Shorts2   📺 그러므로 여기서 구원 얻는 믿음의 두 가지 본질을 '성령의 내주로 인한 내적 증언'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라고 한다면 처음...

노예의지와 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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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증언되는 율법에 대한 행함의 의에 있어서 우리의 의지는 언제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노예의지이지만 성령으로 증언되는 복음에 대한 믿음의 의에 있어서 우리의 의지는 언제든 성공할 수 있는 자유의지입니다. Shorts1   📺 누구나 복음에 대한 단순한 믿음에 의해 법적으로 의롭게 될 뿐만 아니라 본성적으로 새 생명의 새 사람으로 거듭나고 실천적으로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는 신약성경, 특별히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포퓰리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이 아니기에  모든 인류를 위한 진실한 포퓰리즘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 했던 유대인들이 보기에 바울의 이런 가르침은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며 이 가르침을 받고 변화받아 기뻐하는 이방인들을 볼 때  시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불신자의 구원을 위해서나 성도의 복되고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해결책은 이 단순한 십자가 대속의 복음입니다.   YouTube   📺      Shorts2   📺

죄에 대한 세 가지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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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죄 값 범죄한 사람이 대가로 지불해야 할 값으로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그 범죄의 값으로 받아야 할 형벌 2) 그 형벌을 면제받기 위해 지불하는 속전 구약에서 속전은 범죄함으로 손해를 끼친 것과 '같은 종류와 가치'의 재물이나 그 값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직접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이차적인 피해에 대한 배상까지를 포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물이나 돈으로 값을 수 없는 큰 죄는 자신의 생명으로 갚아야 했습니다. Shorts1   📺 성경은 모든 사람이 둘째 사망의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죄를 지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 영원한 형벌에서 건지실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가치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희생의 피를 흘려 자신의 생명을 단번에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새 언약의 제사를 완성하시고 이제 그 사실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단번에 얻는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Shorts2   📺 2. 범죄 사람이 실제로 지은 죄 3. 원죄 원죄도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1) 아담이 지은 최초의 범죄 2) 그 최초의 죄를 짓게 한 사탄의 정신이자 세력과 원리, 그 최초의 범죄와 함께 아담 안에 들어왔고 그 후손에까지 유전되게 된 근원적인 죄, 모든 범죄의 한 원흉(다른 한 원흉은 우리 자신입니다) 로마서 7장에서는 두 번째 의미로 사용되며 이런 의미의 원죄는 로마서에서 보통 정관사와 함께 단수로 사용됩니다. Shorts3   📺 4. 정리 전도자들이 강조하는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 이제 믿는 자에게는 죄가 없다, 성도는 법적으로 의인이다." 라는 표현들은 1번의 '죄 값'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성도가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다거나 원죄가 없어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즉 가장 근원적인 죄인 원죄는 여전히 성도 안에 있으며 실제적인 죄인 범죄는 여전히 지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엄밀한...

로마서로 보는 성도와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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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인인 성도는 초등교사인 율법 아래 있지 않으므로 그 다스림과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그러하고 믿음의 분량을 따라 경험적으로 그러합니다(롬 6:14). 성도가 율법 아래서 율법의 음성을 듣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도 안에 있는 옛 사람입니다(롬 8:13~15). 그리고 그가 아무리 성도가 되었더라도 율법 아래서는 항상 죄인으로 드러나게 됩니다(롬 3:9). 그러나 순전한 믿음 안에 있는 성도에게 율법은 주인인 성도에게 정죄함 없는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주는 종의 역할을 하게 되고 성도는 그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 행함으로 믿기 전에는 항상 실패했던 율법을 이루는 천상적 수준의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롬 3:31). Shorts1   📺 그러나 성도가 믿음 안에서 성령을 따라 자책이나 책망이 없는 완전한 삶을 살고 있을 때에조차 율법의 행위를 기준으로 비추어서 본다면 모든 죄의 근원인 원죄가 있는 연약한 육신 가운데 살고 있는 현세에서는 항상 죄인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롬 3:20; 4:14~16). 그러므로 성도가 율법의 행위로 의로와지려고 시도하는 순간 그가 현재 아무리 경건한 성도일지라도 율법이 요구하는 완전한 의에는 항상 미달된 죄인으로 발견됩니다. YouTube   📺      Shorts2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선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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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창 2:9)가 가르쳐 주는 두 가지 1) 하나님이 정하신 영생의 길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하신 한 가지 말씀을 믿으면 영생을 계속 누리고,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영생을 잃고 반드시 죽게 됩니다(참고-요3:36). 즉 우리는 스스로 영생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만 영생하는 존재들입니다. 2) 선악의 지식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이 영생을 누리게 하는 선이고 믿지 않는 것이 영생을 잃게 하는 악이라는 선악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선악의 진리를 알게 하고 또 믿을 때 영생을 잃지 않게 하는 아담의 성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창조하셔서 동산 중앙에 두신 선하고 선한 나무인 것입니다. Shorts1   📺 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통점과 차이점 1) 공통점 그 나무가 증거하는 한 가지 말씀을 믿을 때 영생을 누리거나 얻습니다. 2) 차이점 (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 에덴 동산 안에서 주신 것입니다. -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이미 얻은 생명을 보존하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 무죄한 상태에서 그 말씀을 믿을 때 에덴 동산에서의 영생을 계속 누리는 중에 그보다 더 뛰어난 천국에서의 영생을 얻을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 그 영생을 잃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 에덴 동산 밖에서 주신 것입니다. - ‘먹으면 반드시 살리라’는 잃은 생명을 얻게 하는 말씀을 선포합니다(요 6:57). - 죄지은 사람이 그 말씀을 단번에 믿을 때 에덴보다 더 완전한 낙원인 천국에서의 영생을 얻게 해줍니다. - 그 얻은 영생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습니다(요 10:28). YouTube   📺      Shorts2   📺

로마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2단계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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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은총적 전도 이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 계속된 전도방법으로서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에게 남겨두신 이성과 양심을 통해 먼저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롬 1:20~21) 또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법과 자기 죄를 깨닫게 하시지만 (롬 2:14~15) 이러한 전도에 의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의 죄를 깨닫는 사람이 없었고 (롬 3:11a) 그래서 구원 받고자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롬 3:11b) 이런 방식의 전도는 지금도 계속되지만 이것으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찾아 구원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Shorts1   📺 2. 특별은총적 전도(롬 3:23~26)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자청을 받아들이셔서 (참고-히 10:7)   마침내 그 아들을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죄물로 죽게 하심으로 구원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 의롭다 하시는 인을 쳐 주시고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YouTube   📺      Shorts2   📺

구원 얻는 믿음의 5가지 구성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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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속죄의 복음 에 대한 이해와 확신(롬 3:21~26) 2. 일생동안 자발적인 배교를 하지 않음(딤후 4:7 히 6:4~6; 10:26) 3. 하늘에 속한 행복과 경건의 열매를 맺음(마 7:19 갈 5:22~23) 4.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아는 인격적인 믿음(마 7:23; 25:12) 5.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와 내주(고후 3:6 롬 8:9,16) 더 늘이거나 줄일 수 있겠지만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5가지를 써봤습니다. YouTube   📺      Shorts   📺

로마서에 나타난 7차원의 구원(롬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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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음 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 1) 신분의 변화 (롬 3:28) 2) 형벌의 면제 (롬 4:7) 3) 감정의 변화 (롬 5:2) 4) 생명의 변화 (롬 5:18) 5) 본성의 변화 (롬 6:2, 18) 6) 생활의 변화 (롬 8:4) 누림의 정도는 믿음의 분량에 따른 각자의 몫이지만 성도이면 이 모든 구원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여섯 가지는 처음에 복음 을 믿을 때(롬 3:22) 성도에게 동시에 주어지며 다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경험상의 논리적 순서를 따라 한 가지씩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Shorts1   📺 그리고 이 모든 구원을 풍성히 누리는데 장애가 되는 세 가지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 주기 위해 세 가지의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 후(롬 6:1, 15; 롬 7:1)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차원의 구원은 ‘몸의 변화(롬 8:23)’ 인데, 이것은 연약과 질병으로부터의 현세적 치유를 뛰어넘는 근본적인 변화이자 주님의 재림 때부터 누리게 되는 구원으로서, 죄가 거하는 지금의 죽을 몸이 죄가 없는 영원한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롬 8:10~11). YouTube   📺      Shorts2   📺

죄와 복음과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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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경험하는 사람의 마음이 복잡할 뿐 복음 은 매우 간단하고 복음 을 믿고 경험하는 것은 더 간단합니다. 복잡해진 마음으로부터 건져내어 단순한 복음 을 주목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를 기대합니다. YouTube   📺      Shorts   📺

옛 사람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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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옛 사람은 세상에 속한 나의 자아, 생명, 재물, 관계 등 믿기 전의 자신과 자신에 속한 모든 것입니다. 처음 십자가 대속의 복음 을 믿을 때 옛 사람인 나는 마음 중심으로 자신을 기꺼이 죽음에 내어 주어 구원과 바꾸었습니다. (롬 6:6)  옛 사람인 내가 처음 복음 을 믿을 때 마음 중심에서 경험적이고 전인적으로 그리스도와 동일시되고 연합되어 함께 죽었습니다. (고후 5:14) 나는 처음 복음 의 진주를 발견했을 때 나의 옛 사람 전부를 기꺼이 팔아서 그 복음을 영접했습니다. (마 13:45~46) Shorts1   📺 구원 받은 이후에도 좀 더 좁은 의미의 옛 사람인 죄의 지배를 받는 내적 인격으로서의 육신이 여전히 내 안에 함께 있지만 (롬 7:25) 이상의 사실에 대한 마음 중심의 고백은 변함없습니다 (갈 2:20) 성도는 그 마음에 거듭난 완전히 새로운 새 생명의 새 사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요 3:6 엡 2:15) YouTube   📺      Shorts2   📺

성령으로 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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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b) 세상이 보기에 성령으로 난 사람도 바람과 같이 알 수 없는 법칙을 따라 세상의 통제를 초월하여 자유롭게 살아가므로 세상은 그들의 행실의 열매는 보고 경험할 수 있으나 그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난 하늘에 속한 영적인 새 피조물로서 성령을 따라 살고 있기에 세상이 보기에 바람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그들만이 아는 진리의 질서를 따라 참 자유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특권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YouTube   📺      Shorts   📺

복음의 세 가지 내용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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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음의 세 가지 내용 1) 본래의 나는 하나님께 지옥의 영벌을 받을 죄인이다. 2) 나의 모든 죄를 아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셨다. 3) 아들의 대속을 근거로 나를 값 없이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중요한 사실로서 이때의 복음 안에 있는 죄에 대한 깨달음은 율법과 사탄의 ‘정죄에 의한 것이 아닌’ 성령의 계시에 의한 깨달음입니다. 2. 구원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나를 의롭다고 선언하셨다는 사실이 나의 구원을 완성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죄로 인해 원수 관계가 된 하나님과 화목 을 이루어서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화목은 나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믿을 때 그 선언을 내 마음에 영원히 인쳐주심과 동시에 마음에서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YouTube   📺      Shorts   📺

로마서 8장의 정죄와 관련한 세 가지 신앙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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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도가(심지어 모든 자연인이 이생을 사는 동안) 그러한 것처럼 로마서 8장의 성도는 영벌을 받는 하나님의 정죄를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가정되거나 나타난 성도가 받는 실제적인 정죄는 '피조물과 율법'에 의한 합법적이거나 불법적인 정죄를 말합니다. 1. 정죄가 없는 건강한 신앙(1, 34절) 실제적이고 인격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함으로 바로 앞의 7장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피조물과 율법에 의한 어떤 합법적이거나 불법적인 정죄도 받지 않는 상태 Shorts1   📺 2. 정죄를 받아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는 신앙(6, 13절) 성도가 은혜와 믿음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닌 율법 아래서 자기 힘으로 의를 행하고자 애쓰는 삶을 살므로 오히려 율법에 의해 죄를 지으려는 욕망이 살아나서 마음에 범죄함으로 율법의 정죄와 그로 인한 수치를 받아 내적인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는 상태 3. 구원을 잃을 수 없는 안전한 신앙(35~39절) 신앙이 건강하건 건강하지 않건 간에 모든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에 의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원 얻는 수준 이상으로 믿는 믿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Shorts2   📺 그 믿음이 37~38절의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라고 고백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할 때도 있고 6절과 13절처럼 믿음이 아주 사라진 것 같은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을 때도 있지만 공통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성령의 내적 증언'과 그 증언에 '아멘'하는 믿음과 신앙 고백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9, 16절). 그러므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구원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확신 있는 강한 믿음을 가짐으로 실제적이고 인격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여 어떤 정죄도 없는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YouTube   📺      Shor...

죄를 경험하는 3단계 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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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율법에 의해 정죄 받는 죄 2. 성령에 의해 책망 받는 죄 3. 복음 안에서 용서 받은 죄 1번은 경험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살아서 역사하는 사탄에 의해 경험하게 됩니다. 1번에 있을 때는 복음에 대한 즉각적이고 담대한 믿음을 통해 3번으로 가야하며 2번에 있을 때는 자비하신 하나님 앞에 인격적인 시인이나 자백을 통해 3번으로 가게 됩니다. 복음이란 율법의 정죄를 통해 죄를 깨닫거나 성령의 책망을 통해 죄를 깨달은 사람에게 제시되는 대속에 의해 죄가 용서되었다는 은혜로운 소식입니다. YouTube   📺      Shorts   📺

로마서 4장 5절에 나타난 두 가지 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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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4:5) 롬 4:5에는 두 가지 칭의가 나오는데요. 먼저는 '의롭다 하시는' (롬4:5a, 헬-현재분사)이고 둘째는 '의로 여기시나니' (롬4:5b, 헬-명사)입니다. 이 두 가지 칭의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믿기 이전에 일방적으로 선포되는 선험적 칭의 첫째 칭의는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아들의 대속을 근거로 먼저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믿기 이전의>  '일방적인 칭의' (롬4:5a)입니다. 이 '일방적인 칭의'는 내가 경험하기 이전의 '칭의'이므로 '선험적 칭의' 라고 할 수 있습니다. Shorts1   📺 2. 믿음에 의해 주어지는 경험적 칭의인 '이신칭의' 둘째 칭의는 그 '선험적 칭의'를 들은 사람이 그 칭의를 '믿을 때' 그 믿음을 선험적 칭의를 받기에 합당한 자세 곧 사람 편에서 갖추어야 할 의(올바름)로 여기셔서 그 '선험적 칭의'를 내 마음에 영원한 칭의로 인쳐주시는 <믿음에 의한> '칭의'(롬 4:5b)인 '이신칭의' 입니다. 이 '칭의'는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여 경험한 칭의이므로 '경험적 칭의'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선한 일을 행한 적이 없고 경건하지도 않은 모든 인류를 향해 하나님께서 아들의 대속을 근거로 먼저 일방적으로 의롭다고 칭해 주실 때 하나님의 그 일방적이고 값 없는 칭의 선언을 어린 아이 같은 믿음으로 단번에 받아들임으로 그 믿는 마음에 성령께서 하나님의 칭의를 영원히 인쳐주셔서 새 사람으로 거듭남으로 얻게 됩니다. YouTube   📺      Shorts2   📺

믿음의 진실성을 분별하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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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나라가 기독교화 되어 기독교적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이 정신문화와 예절문화를 형성했기 때문에 드러난 신앙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흉내내며 스스로까지 속고 있는 생명 없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믿음의 진실성을 분별하는 객관적 기준 으로 삶의 보여지는 모습보다는 믿음에 합당한 초자연적인 능력 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고전 4:20). 초자연적 능력이란 인격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내적 변화의 영향력을 주는 능력으로서의 성령의 열매 가 있고(갈 5:22,23; 롬 14:17), 외적으로는 고백하고 기도한데로 성취되는 능력으로서의 은사적 믿음의 열매 가 있습니다(마 8:13; 9:29). 믿었다면 반드시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히 11:1). Shorts1   📺 성령의 열매의 일순위인 처음 세 가지는 분명히 내적이고 정서적인 것 으로서  복음 에 대한 믿음에 의해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 과 또한 거기서 나오는  '기쁨' 과 '평강' 이 있습니다(롬 5:5 갈 5:22).  그러므로 영적 감정 을 무시하는 사람을 의심해야 합니다. 자기 속에 생명이 없음을 감추려고 감정을 숨기는 거짓 성도가 있고 자기 속의 회개할 죄를 감추려고 감정을 숨기는 육신적인 성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숨기고 있는 상태 역시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보입니다(잠 27:19). YouTube   📺      Shorts2   📺

로마서 7장, 뛰는 죄 위에 나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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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은 죄가 율법을 통해 사람에게 그것을 지킬 수 있다는 자만심을 불어넣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도록 분투하게 만들므로 숨어있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어서 그 사람이 율법의 정죄를 받아 죽게 만들었습니다(롬7:11). 죄의 이런 속임은 사람에게는 율법과 정죄를 통한 사망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지만 넓게 보면 사람에게 죄의 심각성 (롬7:13)과 율법의 거룩함 (롬7:12)과 사람의 무력함 (롬7:24)을 깨닫게 하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결국 구원자를 찾게 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됩니다(롬7:25). 하나님께서는 죄의 이런 속이고 죽이는 역사까지도 통제하시고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십니다. YouTube   📺      Shorts   📺

용서하심과 용서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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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미 용서하심 -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창세 전에 - 역사적으로는 2000년 전에 2. 용서받음 - 이미 이루어 놓으신 완전한 용서를 - 단번에 믿음으로 받음 복음 에는 죄의 저주스러움을 계시하는 것과 은혜의 놀라움을 계시하는 두 부분이 있기 때문에 믿음에도 죄의 저주스러움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과 은혜의 놀라움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두 부분이 있습니다. 이미 정하신 용서를  믿음을 통한 전인격의  자발적인 참여 를 통해 받게 하셨다는 사실이 구원의 관계적 특성 을 잘 드러내줍니다. YouTube   📺      Shorts   📺

성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일어나는 세 가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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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발적인 진정한 낮아짐 2. 정죄와 불안으로부터의 해방 3. 죄의 법과 세력으로부터의 해방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인격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도 '단번에 깨달은 영원한 속죄' 의 교리(히 10:10,14)에 근거해서 정죄를 이긴다고 말합니다.  특히 구체적으로 죄를 범한 이후에도 찔림을 받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다시 십자가의 속죄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요일1:7,9) 이미 깨달은 영원한 속죄의 교리에 근거해서 회개도 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누린다고 말합니다.  Shorts1   📺 그들은 영원한 속죄의 교리를 논리적으로 깨달았을지는 몰라도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그리스도를 만나 뵌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깨달음과 믿음에는 성령의 역사와 인격적인 만남이 빠져 있기에 그것들로는 참된 평안과 죄를 이기는 능력과 진정한 겸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속죄 교리는 사탄의 도구가 되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교제를 단절시키고 양심을 마비시켜서 사람을 그럴듯한 교리를 가진 괴물로 만듭니다. Shorts2   📺 성경적인 영원한 속죄의 교리를 믿으면 구원의 안전에 대한 확신 을 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진실한 회개 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항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참된 평안 과 죄를 이기는 능력 과 진정한 겸손 을 줍니다. 이것이 영원한 속죄의 교리를 믿는 참된 표징 입니다. YouTube   📺      Shorts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