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23의 게시물 표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피 뿌림이 가지는 의미

1. 옛 언약의 피 뿌림(출 24:6~8) 이것은 역사적으로 B.C. 1400년경에 아라비아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행위 율법 언약 때에 제단과 백성에게 뿌려진 번제와 화목제 희생짐승의 피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보편적 율법의 완전한 행위를 통해 구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모든 인류를 대표합니다. 이 피는 시내산 언약의 두 당사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생명을 상징하는데, 양 당사자가 언약을 각자의 생명으로 보증한다는 의미로 뿌려진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편에서는 언약의 모든 내용을 항상 지킬 것이며 지키지 못할 때는 죽음으로 그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미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언약을 지키는 모든 백성에게 약속된 복을 반드시 내려줄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는 (죽으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그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옛 언약의 보편적 도덕법을 모두 지킨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며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 아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 진노에서 합법적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 단번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Shorts1   📺   2. 새 언약의 피 뿌림(마 26:27~28) 이것은 A.D. 33년경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 형틀에서 흘리신 희생의 피입니다.  이 피는 모든 인류의 범죄를 대속하시는 피가 되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제단에 뿌려져서(히 9:11~12; 12:24),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죄사함을 베풀어서, 사람과 화해를 이루게 하시는 피입니다. 그리고 이 피는 그 효력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 뿌려져서(히 10:22 벧전 1:2), 하나님의 영원한 속죄를 선언해 주며, 법적이고 실제적으로 죄로부터 해방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거듭남을 이루어 주고, 성령의 영원한 내주를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두 언약에서 뿌려진 피의 공통점은 그 피...

창세기 3장 큐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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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담이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말씀의 의미는?(창 3:22) 범죄 이전에 아담은 선을 지식과 경험 모두로 알았고 악은 지식으로만 알았지만(창 2:9,17) 범죄 이후에는 거꾸로 선을 지식으로만 알게 되었고 악은 지식과 함께 경험으로까지 알게 되었습니다(창 3:22). 즉 범죄함으로 선의 본질은 알지 못하게 되었고 악의 본질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거나 경험하지 않으셔도 악의 본질을 알고 계시지만 사람은 범죄함을 통해 악의 본질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말씀은 전에 선을 경험으로 알았던 사람이 이제 거꾸로 죄를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며 그래서 '그가 범죄하여 죄의 본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Shorts1   📺 2. 아담이 낙원에서 추방된 이유는?(창 3:24) 그는 범죄함으로 법적이고 실제적으로 죄인이 되어 낙원에 맞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생명나무를 먹고 낙원에서 영생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추방하셨습니다. 그리고 낙원 밖에서 영생을 사모하며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은혜의 복음을 믿어 에덴동산보다 더 좋은 구원을 얻도록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YouTube   📺      Shorts2   📺  

그리스도와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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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고전 15:45)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지만 첫째 아담과 같은 육신이 되어 그 후손으로 오셔서 십자가 대속의 고난을 통해 그 아담이 세상에 불러들인 죄와 저주를 끝내셨다 는 점에서 마지막 아담이십니다. 2. 둘째 아담(사람)이신 그리스도(고전 15:47)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원죄가 없이 태어나셔서 첫째 아담이 세상에 불러들인 죄와 저주에서 해방된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셨다 는 점에서 둘째 아담이십니다.  YouTube   📺      Shorts   📺

성도의 사십 일 금식이 비성경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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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사십 일 금식이 명확하게 나온 곳은 제가 보기에 세 곳인데 모세가 시내산에 두 번째로 율법을 받으러 올라 갔을 때 먹을 것 뿐만 아니라 물도 마시지 않는 완전한 금식을 했다는 것과  엘리야가 천사가 가져다 준 음식의 힘을 의지하여 호렙(시내)산까지 사십 일을 걸어갔다는 것과 주님께서 요단강 침례 후 광야에서 사십 일을 주리신 경우입니다. 이때는 물까지 마시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세 곳이나 사십 일 금식이 나오는데도 그것을 성도에게 적용하는 것이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Shorts1   📺 모세와 엘리야의 경우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금식한 경우로 보이고 자연적 원리를 따른 것으로 보이는 주님의 금식은 메시야로서의 자기 입증을 위한 시험의 과정에서 행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십 일 금식은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은 손쉬운 금식이 아니고 또한 자신을 메시야로 입증하기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위의 세 가지 경우는 그런 금식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십 일 금식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간혹 듣는 사십 일을 금식했다는 분들의 말이 혹시 사실일지라도 과연 그 열매가 성경적일지 신중하게 의심할 것 같습니다. YouTube   📺      Shorts2   📺

로마서가 말하는 사망(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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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가 말하는 부정적 의미의 '사망'은 범죄한 사람이 복음을 믿지 않음으로 그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받게 되는 하나님의 저주로서의 고통을 의미하며 이 저주의 고통은 몸과 영혼 모두로 받는 전인적인 것이지만 로마서에서는 주로 영혼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망의 고통은 각각 그 범죄의 분량을 따라 비례적으로 받으며, 현세와 내세에서 모두 받을 수 있고, 믿지 않는 자연인뿐만 아니라 육신을 따라 사는 성도 역시 받을 수 있습니다. Shorts1   📺 자연인과 성도가 현세에서 공통적으로 받을 수 있는 사망의 고통으로는 그 범죄에 대한 율법의 정죄로 인한 양심의 고통과 수치가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서 오는 영혼의 목마름과 공허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세에서 받는 사망으로는 자연인의 경우 복음을 믿어 죄 용서 받기를 거절하고 이생을 마침으로 지옥에서 받게 되는 영원한 형벌이 있고, 성도의 경우 성령께서 반복적으로 지적하시는 어떤 죄에 대해 끝내 회개하지 않고 이생을 마침으로 주님의 재림 때 받게 되는 불을 통과하는 것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고전 3:15). YouTube   📺      Shorts2   📺

성도의 두려움(경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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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사 11:2~3) 성도가 가져야 할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이 두려움은 율법 아래서 가지는 두려움이 아니라 은혜 아래서 가지는 두려움입니다. 이상하지만 경험하는 사람은 인정하듯이 이 두려움의 열매는 신령한 기쁨, 가장 큰 기쁨과 평안입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두려움이기에  ➤ (주님께는 없지만)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 를 죽음보다 두려워하고 ➤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 끊어지는 것을 더욱 그러하고 ➤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것 을 더욱 그러합니다. 이 두려움은 참된 지식과 지혜의 기초입니다(잠 1:7; 9:10). 이 두려움의 정상이 믿음의 정상입니다(창 22:12). 이 두려움은 예수님의 행복의 근원이었습니다(사 11:3). 이 복된 두려움의 충만을 구합니다. YouTube   📺      Shorts   📺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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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1. 모든 열매의 근원이자 총합 - 사랑 2. 자신과 관련한 내적 열매 - 희락, 화평 3. 이웃과 관련한 실천적 열매 - 오래 참음, 자비, 양선(선량) 4. 하나님과 관련한 태도의 열매 - 충성, 온유, 절제 모든 열매는 질서를 따라 유기적인 ‘하나’(단수)를 이루고 있고 각각이 모두를 위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구분지을 수는 없지만 대체적인 강조점을 따라 이상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Shorts1   📺 여기서 첫번째 열매인 사랑은 행함 이전의 열매로서 십자가 대속의 복음을 믿음으로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롬 5:5).  이어지는 나머지 열매는 그 사랑이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내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내 영혼에 희락과 화평을 가져다 주고  그 힘으로 이웃을 오래 참음과 자비와 선량함으로 대하게 하되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태도 가운데 그렇게 행하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열매는 동시에 맺히는 것이지만 그 성장의 경험적이고 논리적인 순서는 성경에 기록된 순서를 따릅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사랑의 기쁨이 없이 절제의 열매를 맺고 있다면 그 절제는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인간의 자의적 극기일 것입니다.  YouTube   📺      Shorts2   📺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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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처음 주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는 복음에 대한 나누어지지 않은 전심의 믿음을 가지게 되고 해방과 만족의 기쁨이 충만하고 전심으로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열정으로 즐거이 헌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듭남의 체험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죄에 대한 패배와 영적 침체를 경험하며 다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간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침체된 그의 믿음에는 구원을 의심하는 마음과 불안이 함께 합니다. 즉 처음 구원 얻을 때의 믿음보다 많이 작아졌고 약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처음 구원 얻은 믿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믿음이 있을지라도 구원은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신약성경의 많은 예를 보면 그럴지라도 구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눅 22:31~32 롬 14:22~23 고전 5:5 벧후 1:5~11 요일 3:18~20). 그는 여전히 구원 받은 사람이며 그 안에는 구원 얻는 믿음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Shorts1   📺 이를 통해 구원 얻는 믿음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분량과 또는 깨달음의 분량과 또는 확신의 분량과 또는 마음의 집중의 분량과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구원 받을 때의 뜨거운 믿음과 구원 얻는 믿음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의 내적 증언’ (롬 8:9, 16 요일 5:10)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 (마 7:23 요 10:27 고후 13:5)가 있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심으로 유지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약해져서 감정이 식고 깨달음이 둔해지고 마음이 나누어져도 그 믿음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습니다(눅 22:31~32). 내쪽에서 간혹 사라진 것처럼 착각해도 그것은 착각일 뿐 여전히 성령의 내적 증언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의 끈은 경험적으로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Shorts2   📺 그러므로 여기서 구원 얻는 믿음의 두 가지 본질을 '성령의 내주로 인한 내적 증언'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라고 한다면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