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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언약과 새 언약의 피 뿌림이 가지는 의미

1. 옛 언약의 피 뿌림(출 24:6~8) 이것은 역사적으로 B.C. 1400년경에 아라비아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행위 율법 언약 때에 제단과 백성에게 뿌려진 번제와 화목제 희생짐승의 피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보편적 율법의 완전한 행위를 통해 구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모든 인류를 대표합니다. 이 피는 시내산 언약의 두 당사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생명을 상징하는데, 양 당사자가 언약을 각자의 생명으로 보증한다는 의미로 뿌려진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편에서는 언약의 모든 내용을 항상 지킬 것이며 지키지 못할 때는 죽음으로 그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미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언약을 지키는 모든 백성에게 약속된 복을 반드시 내려줄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는 (죽으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그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옛 언약의 보편적 도덕법을 모두 지킨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며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 아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 진노에서 합법적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 단번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Shorts1   📺   2. 새 언약의 피 뿌림(마 26:27~28) 이것은 A.D. 33년경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 형틀에서 흘리신 희생의 피입니다.  이 피는 모든 인류의 범죄를 대속하시는 피가 되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제단에 뿌려져서(히 9:11~12; 12:24),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죄사함을 베풀어서, 사람과 화해를 이루게 하시는 피입니다. 그리고 이 피는 그 효력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 뿌려져서(히 10:22 벧전 1:2), 하나님의 영원한 속죄를 선언해 주며, 법적이고 실제적으로 죄로부터 해방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거듭남을 이루어 주고, 성령의 영원한 내주를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두 언약에서 뿌려진 피의 공통점은 그 피...

믿음과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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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얻는 믿음은 언제나 자신이 자기 행위로는 죄인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의 태도 위에서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과정에서 때로 성령께서 어떤 죄에 대해서 주님 앞에 입술의 자백을 요구하십니다. 이런 자백은 처음 믿을 때와 믿은 이후에 모두 있을 수 있습니다(마 3:6 요일 1:9).  처음 믿을 때 자백하기를 거부하면 믿음을 갖지 못하여 구원 받을 수 없고 믿은 이후에 거부하면 영적 생명의 공급과 주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더 심한 징계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과 회개와 자백은 육신으로 행하는 자기 의와 자기 행위가 아닙니다. 성령과 변화된 양심의 역사에 저항하지 않고 항복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신과 회개하지 않음과 자백하지 않음이 힘써 거역하는 자기 행위입니다. YouTube 📺     Shorts 📺

옛 사람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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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옛 사람은 세상에 속한 나의 자아, 생명, 재물, 관계 등 믿기 전의 자신과 자신에 속한 모든 것입니다. 처음 십자가 대속의 복음 을 믿을 때 옛 사람인 나는 마음 중심으로 자신을 기꺼이 죽음에 내어 주어 구원과 바꾸었습니다. (롬 6:6)  옛 사람인 내가 처음 복음 을 믿을 때 마음 중심에서 경험적이고 전인적으로 그리스도와 동일시되고 연합되어 함께 죽었습니다. (고후 5:14) 나는 처음 복음 의 진주를 발견했을 때 나의 옛 사람 전부를 기꺼이 팔아서 그 복음을 영접했습니다. (마 13:45~46) Shorts1   📺 구원 받은 이후에도 좀 더 좁은 의미의 옛 사람인 죄의 지배를 받는 내적 인격으로서의 육신이 여전히 내 안에 함께 있지만 (롬 7:25) 이상의 사실에 대한 마음 중심의 고백은 변함없습니다 (갈 2:20) 성도는 그 마음에 거듭난 완전히 새로운 새 생명의 새 사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요 3:6 엡 2:15) YouTube   📺      Shorts2   📺

삼 단계 천국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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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 받는 순간 이미 시작된 천국의 삶 2. 죄 , 연약 , 고난 가운데서 자라가는 현세의 천국의 삶 3. 무죄함 , 신령한 몸 , 안식 가운데서 자라가는 내세의 천국의 삶   성도는 믿음 안에서 천국을 살며 또한 그 길을 가는 중입니다 . YouTube   📺      Shorts   📺

믿음의 실제적이고 풍성한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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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에 대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믿음으로 예가 됩니다. (고후 1:20 롬 8:32) 내가 믿음이 작거나 사모함이 없어서 약속들을 누리지 못할지라도 이것은 진리입니다. 복음 에 대한 믿음은 종합선물세트 같아서 그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으며 내적 행복을 누리고 활력 있는 삶을 살며 경건한 삶을 살고 그 믿음 안에서 풍성한 공급을 받으며 유능한 삶을 살고 산을 바다에 던집니다. (마 21:21) 그러므로 복음 을 믿는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이 모든 복을 가치와 선후의 질서를 따라 받아 누리기를 추구하며 세상이 부러워하고 바울의 동족이 시기하는 복된 삶을 살아감으로 (롬 11:11,14) 가장 강력한 전도를 할 수 있고 참된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롬 12:1) YouTube   📺      Shorts   📺  

성령으로 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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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b) 세상이 보기에 성령으로 난 사람도 바람과 같이 알 수 없는 법칙을 따라 세상의 통제를 초월하여 자유롭게 살아가므로 세상은 그들의 행실의 열매는 보고 경험할 수 있으나 그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난 하늘에 속한 영적인 새 피조물로서 성령을 따라 살고 있기에 세상이 보기에 바람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그들만이 아는 진리의 질서를 따라 참 자유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특권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YouTube   📺      Shorts   📺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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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진리의 충만함 가운데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나를 낮추며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행위  신약을 예로 들 경우 예배란 믿음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서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합당한 행위 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주로 동사 로 사용되고(προσκυνέω; 60회; 절하다 ; 요 4:24) 명사로 사용될 때는 행위를 더욱 강조하는 λατρεία( 섬김, 봉사 ; 5회; 롬 9:4;12:1)가 예배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λατρεία의 동사형인 λατρεύω( 섬기다 ; 롬 1:9)는 전체 21회가 사용되었습니다. 참고로 προσκυνέω(프로스쿠네오)는 히브리어 성경의 שָׁחָה(샤카; 절하다 ; 창 22:5; 24:26)를 헬라어 칠십인역에서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칠십인역이 이집트의 헬라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명령에 의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이집트의 예배 형식 인 신을 향해 팔을 뻗어 입맞춤 을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προσκυνέω( ~향해 입맞추다 )가 대표적인  이스라엘의 예배 형식  중 하나인 신께 절 하는 것을 의미하는 שָׁחָה를 번역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1) . 그리고 당시에 권위 있게 통용되던 칠십인역의 이러한 용례가 신약성경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προσκυνέω의 문자적 의미가 '~향해 입맞추다' 임에도 기본적으로 '절하다' 의 의미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번역이 이렇게 문화적 영향을 받은 경우는 한글성경에서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만찬의 빵이 떡으로 번역된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1. 문자적 의미 명사 가 아닌 동사 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절하다(προσκυνέω; 60회; 요 4:24) - 예를 갖추어 절하다(예배). -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하다(경배). - 회중예배, 특히 만찬예배에 더욱 적합한 용어  2) 섬기다(λατρεύω...

로마서 7장 25절의 두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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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 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 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b) 성도의 거듭난 마음 은 하나님의 법을 진실로 즐거워하며 섬깁니다. 그러나 거듭난 마음일지라도 스스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길 능력이 전혀 없고 옛 사람인 육신이 여전히 성도 안에 거하기 때문에  만일 그 마음이 성령께서 증언해 주시는 십자가 대속의 은혜 를 항상 있는 구원 얻는 믿음 이상의 견고하고 (롬 4:18~21) 성숙한 믿음 (롬 6:3~7)으로 믿지 않을 때는  그 내면이 옛 사람인 육신 이 주도하는 율법적 이거나(롬 7:14~24) 정욕적 인(롬 6:1,15) 상태가 될 수 있으며 율법적인 상태일 때는 원하지 않음 에도 연약하여 내적 으로 범죄하게 되고, 정욕적인 상태일 때는 자발적 으로 행위 로까지 범죄하게 됩니다. YouTube   📺      Shorts   📺

믿음과 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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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말이라면 행함은 마차 믿음이 기관차라면 행함은 객차 믿음이 원인이라면 행함은 결과 믿음은 행함을 낳는 부모 믿음은 마음과 관련되고 행함은 몸과 관련되므로 마음이 몸의 주인인 것처럼 믿음이 행함의 주인이 됨 그래서 야고보는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한다고 함 Shorts1   📺 믿음에서 행함이 나오나 행함에서는 믿음이 나오지 않음 믿음으로 믿음에 이름 (롬 1:17) 믿음의 내용인 말씀은 생명이기에 참 믿음은 말씀의 깨달음과 함께 자라가고 그 믿음만큼 마음이 변한 것이고 행복하고 경건하고 유능합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로서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행하면 살리라'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믿으면 살리라'에 대한 믿음이고 그 믿음의 핵심적 내용은 십자가 대속의 은혜입니다. YouTube   📺      Shorts2   📺

믿음에 대한 어원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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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서 ‘믿음’(πίστις)은 ‘설득(촉구)하다’(πείθω)라는 동사를 어원으로 가집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핵심적 의미에는 ‘설득됨’ 이 있습니다. 즉 성령의 증언에 설득되어 그 증언을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 얻는 영적 차원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는 데는 전도자가 효과적으로 증언하도록 역사해주시고 또한 전도자와 함께(때로는 전도자 없이) 증언하시는 성령의 강력하고 인격적인 증언 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구원 얻는 믿음에는 그리스도를 그분의 말씀과 함께 영적 인격으로 만나는 사건이 항상 먼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증언에 설득되어 받아들인 것이 믿음이라는 점에서 믿음은 성령과 그 증언과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영접하는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수단 입니다(히 11:3).  Shorts1   📺 믿음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주도하심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며 내 편에서는 나를 충분히 설득해주신 그 증언을 거역하지 않고 그 주님을 감사함으로 환영하여 마음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참 믿음은 ‘하나님의 것’ (합 2:4 칠십인역)이고 또 ‘나의 것’ (합 2:4 마소라본)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자의 거듭남을 위한 단번의 믿음과 성도의 영적 성장을 위한 충만한 믿음을 위해서는 복음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뛰어넘는 영적 경험으로서의 실제적인 성령의 역사 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믿음의 어원을 살펴보다가 정리한 글입니다. YouTube   📺      Shorts2   📺

오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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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으로 정죄의 매를 맞으면서 죄를 깨닫지 말고 성령 으로 온유하게 깨닫게 하실 때 듣고 시인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고 겸손하고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죄의 문제와 나의 모든 문제를 율법보다 높고 능력 있는 상담자이시고 치료자이신 예수님께 가지고 갑니다.  율법으로 죄를 깨닫는 것은 완고한 사람이 자초하여 그 아래 들어감으로  차선책 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Shorts1   📺 우리는 육신 즉 나의 옛 사람에게 빚졌거나 율법에게 빚진 것이 아니므로 그것들에게로 가서 그것들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빚진 것이니 먼저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로 내어주신 예수님께 가야 하고 그 다음의 모든 일도 성령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율법과 육신과 세상은 성도와 상관이 없고 심지어 예수님을 소개받고 의지하기로 한 모든 자연인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 없음과 완고함으로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YouTube   📺      Shorts2   📺

믿음 안에 있는 세 종류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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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신을 위한 지식(고전 8:1) 육신을 이롭게 하는 지식은 죄가 되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2. 영혼을 위한 지식 구원 얻고 성장해가는 믿음의 내용 으로서의 지식이자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품에 대해 깨달아 믿고 있는 지식 이며 그래서 믿음의 성장은 필수적 으로 이 지식의 성장을 전제합니다. 영혼을 위한 지식에도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각각 ‘듣고 깨달아 믿는 지식’과 ‘순종하여 깨달아 믿는 지식’이 있습니다. Shorts1   📺 1) 듣고 깨달아 믿는 지식(엡 3:18~19) 우리는 구원을 이런 지식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이 지식도 믿음의 분량을 넘어서거나(참고-고후 12:7) 문자적 차원으로 아는데 그치면(약 3:13~18) 교만하게 합니다. 2) 순종하여 깨달아 믿는 지식(빌 3:8~12) 듣고 깨달은 지식을 참되게 믿으면 합당하게 순종하게 되며 그 순종을 통해 새롭게 깨닫고 믿게 되므로 신앙의 성장이 일어납니다. 신앙의 성장은 ‘듣고 깨달은 지식에 대한 믿음’과 ‘순종하여 깨달은 지식에 대한 믿음’이 선순환하며 일어납니다. 그리고 순종을 통해 얻은 지식도 경외심이 약해져서 육신적인 상태가 되면 교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참고-잠 1:7; 9:10 시 111:10). 즉 모든 지식은 현재 믿음의 상태에 따라 교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조금 두렵네요 -_-; YouTube   📺      Shorts2   📺  

신앙의 두 가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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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최우선적인 목적 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답하셨나요? 틀렸습니다. 신앙으로 인한 행복입니다. 행복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복음 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첫 세 가지 열매는 부어진 사랑과 희락과 평강(εἰρήνη)입니다. 행복한 신앙인의 최고의 목적 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복음 의 행복은 주장하지 않아도 퍼져 나가고 애쓰지 않아도 뜻을 성취합니다. YouTube   📺      Shorts   📺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싸움(엡 4: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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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안에 있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은 각각 마귀와 성령에 속하여 다른 생명을 가지고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으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욕에게 영향받고 있다면 그 사람은 옛 사람이고 그때 새 사람은 숨었거나 근심하는 상태입니다.  정욕에 영향받을 때 그것을 이기는 길은 영향받는 상태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자백할 죄를 자백하고 은혜의 복음 을 굳게 믿음으로 성령에 의해 새 사람을 입는 것이며 그것이 곧 차원을 이동하는 것이고 옛 사람을 벗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욕이란 몸의 생리적 욕망이나 마음의 욕망 자체를 의미하지 않고(이 자체는 선한 것입니다) 그 욕망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한계를 넘어가서 죄의 법을 이루려고 할 때의 악한 욕망을 말합니다. YouTube   📺      Shorts   📺

복음의 세 가지 내용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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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음의 세 가지 내용 1) 본래의 나는 하나님께 지옥의 영벌을 받을 죄인이다. 2) 나의 모든 죄를 아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셨다. 3) 아들의 대속을 근거로 나를 값 없이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중요한 사실로서 이때의 복음 안에 있는 죄에 대한 깨달음은 율법과 사탄의 ‘정죄에 의한 것이 아닌’ 성령의 계시에 의한 깨달음입니다. 2. 구원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나를 의롭다고 선언하셨다는 사실이 나의 구원을 완성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죄로 인해 원수 관계가 된 하나님과 화목 을 이루어서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화목은 나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믿을 때 그 선언을 내 마음에 영원히 인쳐주심과 동시에 마음에서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YouTube   📺      Shorts   📺

로마서 8장의 정죄와 관련한 세 가지 신앙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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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도가(심지어 모든 자연인이 이생을 사는 동안) 그러한 것처럼 로마서 8장의 성도는 영벌을 받는 하나님의 정죄를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가정되거나 나타난 성도가 받는 실제적인 정죄는 '피조물과 율법'에 의한 합법적이거나 불법적인 정죄를 말합니다. 1. 정죄가 없는 건강한 신앙(1, 34절) 실제적이고 인격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함으로 바로 앞의 7장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피조물과 율법에 의한 어떤 합법적이거나 불법적인 정죄도 받지 않는 상태 Shorts1   📺 2. 정죄를 받아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는 신앙(6, 13절) 성도가 은혜와 믿음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닌 율법 아래서 자기 힘으로 의를 행하고자 애쓰는 삶을 살므로 오히려 율법에 의해 죄를 지으려는 욕망이 살아나서 마음에 범죄함으로 율법의 정죄와 그로 인한 수치를 받아 내적인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는 상태 3. 구원을 잃을 수 없는 안전한 신앙(35~39절) 신앙이 건강하건 건강하지 않건 간에 모든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에 의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원 얻는 수준 이상으로 믿는 믿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Shorts2   📺 그 믿음이 37~38절의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라고 고백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할 때도 있고 6절과 13절처럼 믿음이 아주 사라진 것 같은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을 때도 있지만 공통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성령의 내적 증언'과 그 증언에 '아멘'하는 믿음과 신앙 고백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9, 16절). 그러므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구원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확신 있는 강한 믿음을 가짐으로 실제적이고 인격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여 어떤 정죄도 없는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YouTube   📺      Shor...

계시와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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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는 진리의 영역이고 비타협의 영역이며 분별은 개인적 선택의 영역이고 자유의 영역입니다. 바울은 이 둘을 구분했습니다. 복음 에 행위를 포함시키는 것은 싸워야 할 진리의 영역이며 음식과 날에 경중의 가치를 두는 것 등의 문제는 각자가 확정할 분별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별의 영역에서 각자가 양심과 신앙으로 확정한 내용에 대해서 혼란을 갖지 말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과 같은 효력이 있었습니다. 어떤 서원을 할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서원 자체도 강제의 규정이 아니지만 각자가 자원하여 세부적으로 다양한 내용의 서원을 합니다. 그리고 일단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에 대해서는 번복하지 말고 지켜야 했습니다. 만일 지키지 않을 경우 신실하지 못한 행동이 되어 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유롭게 확정할 수 있는 개인적 분별의 영역에서도 일단 확정하였으면 그것을 타당한 이유 없이 번복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하라(롬 14:5).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신을 심판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의심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정죄 받았다. 왜냐하면 그가 확정한 대로 믿음으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다 죄이다(롬 14:22~23)."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상황윤리 같지만 상황윤리가 아닌 것은 하나님 앞에 각자가 믿음과 양심으로 확정한 후에 그 원리를 따라 일관되게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이유(새로운 깨달음 등) 없이 자신의 확정한 분별을 나누어진 마음으로 변경하는 것을 불신의 죄라고 하셨고 정죄의 대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의 정죄는 문맥을 볼 때 하나님의 정죄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의해 자신에게 하는 정죄입니다. 이 정죄는 자신의 마음에 고통을 주고 생활에 고난을 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징계를 부르는 정죄이고 또한 내세의 상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죄일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계시로 받은 진리와 개인적 의견을 구별했습니다. "...

네 가지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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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인격적 완전의 단계를 분류하여 이름을 붙이자면 최소한 다음 4가지가 있습니다. 1. 본질적 완전 2. 주관적 완전 3. 객관적 완전 4. 절대적 완전   1. 본질적 완전 1) 거듭난 새 생명의 완전 2) 좁은 의미의 새 사람의 완전 - 범죄할 수 없는 새 사람 - 죄의 종이 될 수 없는 새 사람 - 사탄이 만질 수도 없는 새 사람 - 조금도 그 성품을 타락시킬 수 없는 새 사람 3) '법적-신분적' 완전과 동시에 존재하는 완전 (요 3:6b 롬 6:2,7,18,22 요일 3:6,9; 5:18) 2. 주관적 완전 1) 성령 안에서 자신의 양심으로 평가되는 완전 2) 하나님 앞에 스스로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 3) 기도에 막힘이 없고 모두 응답 받는 상태 4) 그리스도의 모든 분량에 이르는 길에서의 '주관적-과정적' 완전 (고전 4:4a; 빌 3:15a; 요일 3:21,22; 요 15:7) Shorts1   📺 3. 객관적 완전 1) 사람이 평가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평가하시는 완전 2) 하나님 보시기에 현재 받은 경건의 계시대로 완전한 삶을 사는 상태 3) 그리스도의 모든 분량에 이르는 길에서의 '객관적-과정적' 완전 (고전 4:4b; 8:2; 10:12) 4. 절대적 완전 - 그리스도의 모든 분량에 이른 완전 (참고-빌 3:10~16) 모든 성도는 항상 1의 본질적 완전 가운데 있으며  이 땅에서 한시적으로 2의 주관적 완전에 이를 수 있으나 평생 지속적으로 주관적 완전 가운데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약 3:2 전 7:20). 그리고 잠시라도 3의 객관적 완전에 이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고 4의 절대적 완전에는 한 순간도 이를 수 없습니다. Shorts2   📺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때 모든 성도는 각자가 달음질한 분량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로 ‘근원적인 죄’(원죄; 롬 7:17,20)와 그 영향력이 사라진 신령한 몸을 입음으로 인해 객관적 완전보다 뛰어난 무죄한 천상적 ...

믿음(히브리서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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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믿음 은  '바라는 것'을  이루어줌 으로 그 바라는 것의 '실상'(Reality)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함 으로 그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Evidence)가 됩니다. 이 해석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무수한 예가 증명해줍니다. 선진들은 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언(Testimony)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믿은  그대로  약속된  그때에 이루어짐으로 그 참됨을 입증합니다.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마 8:13) YouTube   📺      Shorts   📺

사도 바울과 야고보의 율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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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흐름에서 말하자면 사도 바울과 야고보는 율법의 대상과 성격과 목적과 성취 가능성에 대해 각각 상반되는 관점에서 설명했으며 바울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면 야고보는 긍정적이었습니다. 1. 바울의 부정적 율법관(갈 3:10) 1) 율법의 대상 성령께서 증언하시는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완고한 자연인이나 은혜의  복음 을 믿음으로 살지 않는 정욕적이거나 율법적인 성도 2) 율법의 성격 진리의 초등교사가 되어 완고한 자연인에게는 영벌 받을 죄를 깨닫게 하고 정욕적이거나 율법적인 성도에게는 징계 받을 죄를 깨닫게 함으로 양심에 정죄를 받아 사망의 고통을 겪게 함 Shorts1   📺 3) 율법의 목적 완고한 자연인이나 정욕적이거나 율법적인 성도가 현재의 잘못된 삶에서 돌이켜 은혜의 복음을 믿도록 인도함 4) 율법의 성취 가능성 율법은 믿음 밖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믿음의 능력이 아닌 오직 자기 힘으로 지키려고 시도하게 되지만 율법이 요구하는 수준만큼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음 Shorts2   📺 2. 야고보의 긍정적 율법관(약 2:10) 1) 율법의 대상 거듭난 모든 성도 2) 율법의 성격 믿음으로 사는 성도에게는 경건의 교재가 되고 육신을 따라 사는 성도에게는 책망과 징계의 기준이 됨 3) 율법의 목적 성도를 교정하고 경건한 삶을 살도록 인도함 4) 율법의 성취 가능성 믿음으로 사는 모든 성도가 지킬 수 있으며 지킬 때 참된 자유를 누림(약 1:25; 2:12) YouTube   📺      Shorts3   📺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나(로마서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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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인격의 핵심인 사람의 영혼은 불멸이며 그래서 죽음이란 소멸이 아니고 이 영혼이 연합한 어떤 대상과 단절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 단절로 인해 내 영혼의 상태가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리고 영혼이 ' 경험 ' 하는 단절에는 몸과의 단절 이외에도 죄 , 율법 , 육신 등 ' 영적 실재들과의 단절 ' 이 있습니다 . 후자의 경우 바울 서신 ( 특히 롬 6 장 ) 의 묘사를 볼 때 그 단절과 변화에는 ' 법적 , 본성적 , 실천적 ' 차원이 있습니다 . 영혼이 불멸이라는 점에서 구원 받은 지금의 나는 구원 받기 이전의 나와 동일한 나이며 그러나 변화된 나 새로와진 나입니다 . Shorts1   📺 갈 2:20 이나 롬 6:6a 등에서  "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 는 것은 죄와 율법과 육신에게 ' 법적 , 본성적 ' 차원에서 매여 있던 내가 ' 처음 복음 을 믿는 순간 ' 이것들로부터 그 두 차원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이제 영원하고 새로운 변화 가운데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리고 현재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 실천적 ' 차원에서도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 YouTube   📺      Shorts2   📺

나는 누구인가?(성서 인간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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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론과 그리스도론(기독론)은 '인간론 안에 있는 성령에 대한 논의'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고 또한 이 인간론 차원의 성령에 대한 논의는 다르게 표현하면 '경험적 성령론' 인데 이 분야 역시 제가 알기로 체계적으로 연구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언어논리적, 즉 조직신학적 성령론 자체도 연구가 매우 빈약한 것 같습니다. 또한 인간론에 대한 정립은 사람의 경험 안에서 일어나는 회개, 믿음, 거듭남, 성화, 성령의 내적 역사 등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과 직결됩니다. Shorts1   📺 모든 고등 종교와 사상에는 체계적인 인간론과 인간개조론이 있고 현대 학문에서 그것이 여러 종류의 심리학으로도 불리지만 제가 믿기로는 성경에 명확하게 계시된 인간에 대한 지식이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에 있어서 단연 으뜸입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성경의 절반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람에 대한 계시이기에 성서 인간론은 매우 중요하며 또한 뇌과학 등 인간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깊어져서 그것을 삶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선용하거나 악용할 수 있고 심지어 인간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려는 움직임까지 있는 현대에는 인간론이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YouTube   📺      Shorts2   📺

적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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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단 9:27) 성경에서 정치 지도자로 등장하는 적그리스도는 그 인상과 언행의 외모에서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념과 정책으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세상과 거짓 그리스도인은 그에게 완전히 속아서 따르겠지만 대부분의 참 성도 역시 독일 교회가 히틀러에게 그러했고 북한 교회가 김일성에게 그러했고 성경에서 열 처녀가 모두 졸고 있었듯이 처음에는 그에게 속을 수 있습니다. 그는 광명의 천사와 같이 보이고 평화를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평화조약을 맺지만 결국은 위의 두 독재자처럼 성도를 박해합니다. YouTube   📺      Shorts   📺

나는 누구인가? (성서 인간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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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신론 이 어렵다고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그리스도론 으로서 어떻게 신성과 인성이 한 몸 안에 혼합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위격(인격)으로서 통일되게 있느냐 입니다. 그리고 더 어려운 것은 인간론 입니다. 어떠한 관계와 구조 로 구원 받은 한 성도 안에 죄와 옛 사람 대 새 사람과 성령 이 함께 있느냐 입니다. 이때 나의 마음과 양심 은 이 네 가지와 관련하여 각각 어떻게 정의되느냐 입니다. 바울은 자기 서신의 여러 곳에서 한 인격 안에 있는 이러한 여러 내적 부분과 존재들의 특성과 역학 관계를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Shorts1   📺 인간론이 어렵다고 한 이유는 순수한 신성의 영역을 논하는 신론이나 그 절반이 신론의 성격을 가지는 그리스도론은 인간의 지성을 초월하는 영역의 주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격적으로 만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에 대한 개인적 신뢰를 바탕으로 계시해 주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격이 강한 반면 주로 우리 자신의 영혼몸과 지정의의 경험에 근거해서 말씀하시는 인간론 영역은 우리가 전인적 경험으로 공감하며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론과 그리스도론은 역사적으로 정통 교회 안에서 정리가 되었지만 인간론은 제가 볼 때 아직 깜깜한 상태 같습니다. YouTube   📺      Shorts2   📺

산상수훈의 세 가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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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율법과 그 형벌 에 대한 완전한 계시 2.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죄 용서 의 크기 3. 성도가 주님 안에서 추구해야 할 거룩한 삶 의 모범(마 5:48 롬 8:29) YouTube   📺      Shorts   📺

죄를 경험하는 3단계 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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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율법에 의해 정죄 받는 죄 2. 성령에 의해 책망 받는 죄 3. 복음 안에서 용서 받은 죄 1번은 경험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살아서 역사하는 사탄에 의해 경험하게 됩니다. 1번에 있을 때는 복음에 대한 즉각적이고 담대한 믿음을 통해 3번으로 가야하며 2번에 있을 때는 자비하신 하나님 앞에 인격적인 시인이나 자백을 통해 3번으로 가게 됩니다. 복음이란 율법의 정죄를 통해 죄를 깨닫거나 성령의 책망을 통해 죄를 깨달은 사람에게 제시되는 대속에 의해 죄가 용서되었다는 은혜로운 소식입니다. YouTube   📺      Shorts   📺

육신에게 빚지지 않은 새 사람(롬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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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빚)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롬 8:12) 우리는 빚을 졌지만 육신에게 진 강제적인 빚이 아니므로 율법을 행해서 육신에게 갚으라고 우리를 속이고 위협하는 죄와 사탄의 음성을 들어서는 안되며 꾸짖어서 물리쳐야 합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진 사랑의 빚이므로 성령을 따라 하나님께 갚으려고 힘습니다. YouTube   📺      Shorts   📺

성도를 대하는 성숙의 4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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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님은 나를 제일 사랑하신다. 신앙 초기에 이것이 없으면 구원 받았음을 의심해보아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의식입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내가 체험한 주님의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사랑이고 나 외에는 체험한 사람이 없는 유일무이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2. 주님은 다른 성도도 나와 똑같이 사랑하신다.  그의 간증을 들어보니 그 성도 안에 계신 주님이 정말 놀랍고 그가 받은 사랑이 정말 놀랍기 때문입니다. 3. 저 성도는 나보다 훌륭하다.  왜냐하면 같은 놀라운 사랑을 받고도 주님을 사랑하는 열심이 나를 앞서기 때문입니다. 4. 모든 성도는 나보다 훌륭하다.  왜냐하면 나는 형편없는 죄인이었고 지금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모든 성도보다 형편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4번의 성숙에 이르는 것이 사모됩니다. YouTube   📺      Shorts   📺